2011년 봄
2011년 7월에 희선을 요양병원에 보내기 전까지, 나는 매일 점심 집에 들러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이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하루에 집, 회사를 2번씩 오고 간 것이다. 희선은 날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다. 말은 못하고,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떤 때는 내가 누구나고 물어보면 아빠라고 했다. 하루 하루가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뭔가를 시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인간들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았겠지만. 교모세포종에 대해서 주변에 누구보다도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었지만, 희선을 단순한 case로 볼 수는 없었다. 객관성이란 애정이 없는 대상에 대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게 3년전이다. 어린이들이었던 아들 둘은 이제 둘 다 사춘기다. 사후세계, 영혼, 그런 것들에 대한 책을 숱하게 읽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나의 현실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희선은 “여기” 있지 않고, 나만 혼자 “여기” 있다는 것 뿐이다. 나보다 더 잘 걷던, 반바지를 입고 힘차게 걷던, 저 먼 발치에 서서 나를 보며 웃던 희선이, 2010년 봄의 희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