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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14

희선

말수가 적은 여자 순수한 여자 친절한 여자 나는 희선 같은 여자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A thought

Nothing needs to be done Nothing needs to be changed. I let things pass beside me. I let time pass beside me. My life has no purpose. I can just live and wait for the end of this life to come anytime it wants to come. It was my mistake to step into this life. I cannot undo anything - not a single thing - in my life. She had to die. I had to live alone. She had to suffer. I had to suffer, too. The best thing I can do is to let things be. Let the world go its course. I just sit and watch. I will find out what this world has in its sleeve to offer to me. More pain?

My life is a mess, so what.

My life is a mess. My wife died. I am a widower. So what? Who cares? I am just a single grain of sand in an hourglass.

생각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다른 인간들이 자신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듯이 나도 나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지호가 중학교 입학하는 것만이라도 보고 싶다던 희선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고, 이제 승호가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던 나의 인생.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 때부터 안 좋았던 느낌. 항상, 성인이 되어서도 뭔가 잘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그 모든 느낌이 옳았던 것이다. 삶보다는 죽음. 활동보다는 무기력. 존재보다는 비존재를 선택하는 나의 성향은 이 세상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았던 나의 영혼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짜르트는 35세에 죽었다. 내가 같은 나이에 죽었다면 나는 2001년에 죽었다. 13년 동안 뭘했는가? 짧은 생존의 앞과 뒤에 존재하는 시간이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만약 이 삶이 끝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면, 질적으로, 양적으로, 우주의 규모에 비교해 볼 때, 인간의 삶과 하루살이의 삶은 큰 차이가 없다. 우주의 전체 시간과 자신의 생존시간의 비교를 인간이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목적, 의미, 노력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다행히도, 육체가 없어지면 존재도 소멸한다고 믿는 현대문명의 지식에 세뇌당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지적으로는 자신의 유한성을 믿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지식과 느낌의 부조화를 깨닫지도 못한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꺼지는 촛불같은 짧은 시간 속에서 무슨 의미, 목적, 행위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깊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견디어내는 것 뿐이다. 자신들이 지적으로 믿고 있는 내용을 만약에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면, 한 번 밟으면 몸통이 으깨어져 죽어가는 바퀴벌레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는 거대한 우주의 시간

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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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희선은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이 인생이 감옥이라면 탈옥의 가능성은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순식간에 늙고, 그래서 빨리 이 세상을 떠나가기를 바란다.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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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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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

희선이 세상을 떠난 후 몇개월 지나고 나서 X는 내게 말했다. "야. 나도 친구 중에 홀아비 있어. 나도 어떤 건지 알아." 원래 뭐든지 아는 척하는 인간이지만 과부도, 홀아비도 아닌 주제에 홀아비의 심정을 다 아는 척 하는 그 잘난 척에 나는 기가 막혔다. Iris Murdoch - “Bereavement is a darkness impenetrable to the imagination of the unbereaved.”

My purpose here in this life

I read a book called "Many lives, many masters." It is a psychiatrist's record of a patient who remembers her past lives during hypnosis sessions. The subject and content is nothing new to me. But this time, I had a thought about why I became a widower. Maybe, I planned this life as a chance to learn loneliness. That is why Heesun had to die and I cannot find any hope or desire of meeting another person who will replace her. If so, I should live alone and die alone. I should learn the meaning of solitude until I die. Rather than trying to get back closer to people, I should stay alone and cut myself from other people. After all, I don't find much meaning in mingling with people. And for them, I am just someone who reminds of unpleasant possibility of losing one's spouse. Someone told me that I should meet people more often. I think that is a problematic advice. They don't please me because they have what I lost. And I am not a pleasant sight for them

Another waste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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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make me sit here and waste my life.

금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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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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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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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인간들하고 점심을 먹는 사고가 일어났다. 괴로웠다. 부처가 말한, 보기 싫은 인간들을 만나야 하는 고통. 나는 이런 인간이다. 나는 이렇게 잘났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이런 메세지를 계속해서 던지는 인간을 보고 있으니 인간이란 동물이 얼마나 웃기는 존재인가를 느꼈다. 가련한 존재. 애처로운 존재.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오면서 받은 명함들을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런 인간들하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혼자서 3만년동안 점심을 혼자 먹는 쪽을 택하겠다.

월요일 밤 11시

희선. 마누라. 사진을 스캔한 지 오래 되었다. 좀 게을러진 것이다. 혼자 사는 것에 지쳐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여러 개의 영화가 연결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로맨스 영화, 가족영화,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공포영화,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다. 희선이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이후에, 그리고 희선이 죽고 난 후에는 그 전에 내가 살았던 삶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아이들도 엄마하고 어디에 갔었는가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면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 아이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희선이 병든 시점에서 칼로 자르듯이 허리가 잘려나간 것 같다. 희선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지고, 무의미한 고통을 받다가 결국에는 유언도 못남기고 죽어간 모습을 보았다 .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들이 주로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하는 놀이다. 나는 희선의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에는 그 고통에 너무 가까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조차도 그 고통을 같이 할 수는 없었다. 신이 있다면, 아니면 신과는 상관없이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내가 이런 인생을 선택했다면, 도대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가? 무의미한 고통, 부재, 남은 인간의 외로움. 결국 내가 끌어낼 수 있는 깨달음은 하나 밖에 없다. 인생이 허상이라는 것.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나의 존재도, 희선의 존재 만큼이나 위태롭고, 언제든지 희선처럼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것.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배우려고 했던 것인가? 내가. 인생에 침을 뱉어주고, 문을 닫고 인생에서 나가버리고 싶어하는 나의 성향에, 희선의 부당한 죽음은 마치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것과 같았는데, 자식이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인생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된 운명이라는 것. 이건 아이러니다. 강렬한 증오를 느끼는데, 그 증오를 퍼부을 대상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내가 바로 그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것. 가슴이 자주 답답하다.

Waste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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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make me sit here and waste my life. I don't care.

일요일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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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느낌. 애들 밥 먹이고. 빨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