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다른 인간들이 자신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듯이 나도 나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지호가 중학교 입학하는 것만이라도 보고 싶다던 희선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고, 이제 승호가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던 나의 인생.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 때부터 안 좋았던 느낌. 항상, 성인이 되어서도 뭔가 잘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그 모든 느낌이 옳았던 것이다.
삶보다는 죽음. 활동보다는 무기력. 존재보다는 비존재를 선택하는 나의 성향은 이 세상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았던 나의 영혼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짜르트는 35세에 죽었다. 내가 같은 나이에 죽었다면 나는 2001년에 죽었다. 13년 동안 뭘했는가?
짧은 생존의 앞과 뒤에 존재하는 시간이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만약 이 삶이 끝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면, 질적으로, 양적으로, 우주의 규모에 비교해 볼 때, 인간의 삶과 하루살이의 삶은 큰 차이가 없다. 우주의 전체 시간과 자신의 생존시간의 비교를 인간이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목적, 의미, 노력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다행히도, 육체가 없어지면 존재도 소멸한다고 믿는 현대문명의 지식에 세뇌당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지적으로는 자신의 유한성을 믿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지식과 느낌의 부조화를 깨닫지도 못한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꺼지는 촛불같은 짧은 시간 속에서 무슨 의미, 목적, 행위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깊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견디어내는 것 뿐이다. 자신들이 지적으로 믿고 있는 내용을 만약에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면, 한 번 밟으면 몸통이 으깨어져 죽어가는 바퀴벌레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는 거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들은 모든 것을 던져 버리거나, 모든 것을 시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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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것이 우연이라면, 그냥 재수없는, 미친 짓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필연이라면, 이렇게 일이 벌어지게 만든 그 누군가를 잡아서 죽도록 패줘야 한다.
어느 경우든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지거나, 이 미친 세상을 떠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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