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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까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유일한 질문은 자살이라고 말했다. Il n'y a qu'un probleme philosophique vraiment serieux : c'est le suicide. 삶의 가치가 없다면 계속 사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니까. 영화를 보다가 더 이상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도중에서 나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엄청나게 재미없는 영화일 경우에. 자살도 비슷한 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자를 비난한다. 끔직하게 무의미하게 따분한 영화를 끝까지 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격이다. 왜 그럴까. 지겨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과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잔인한 행위인가? 삶이라는 영화는 결말이 너무나 뻔한데도 인간들은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반드시 죽고, 다른 등장인물도 다 죽어버리는 진부한 스토리의 재탕인데도....

I hated my life even before all of this happened

When I think about it, it seems I hated my life even before my wife died in May 2012 because of glioblastoma. Glioblastoma is not a name of an alien life-form. It is a horrible brain cancer that kills 80% of the patients within 1 year. I did my best, though I sometime faltered because it was too hard to serve as the only caretaker for my wife, for the three year period from 2009 to 2012, to save my wife. I failed. She died. My life sucked the very moment I found out she had the cancer and it still sucks. Why I hated my life before all this happened? I used to tell my mother in my teens. “If you had asked me if I want to come out to this world before you gave birth to me, I must have said NO.” My mother’s typical response to this ungrateful remark was “You, son of a bitch.” Anyway, the point is I was a pessimist since I was a boy. And my life turned to the direction that made me more and more of pessimist. The only thing that made my life meaningful was my wife. She was a down-...

12:01 AM Feb. 28, 2013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10개월이 되어 간다. 그러나 아내가 상태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훨씬 전이었다. 정신적으로 아내가 내 곁에 더 이상 있지 않았던 것으로 따지면 거의 2년전이 된다. 실질적으로 홀아비 생활을 한지 2년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정신의학적으로 스트레스를 매길 때 가장 높은 것이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한다. 홀아비는 같은 연배의 기혼남보다 배우자 사망후 6개월 동안에 사망율이 60%가 높다고 한다. 이런 통계는 상실감, 일상 생활의 어려움 등을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나의 정신을 나날이 갉아먹는 가장 큰 느낌은 가장 가깝던 사람이 갑자기 이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져버린 것에 대해 느끼는 공허감, 허무함이다. 사후 세계에서 개별적인 의식이 유지된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있지만, 나는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내가 묶여 있는 한 내가 매일 반복해서 느끼는 것은 한 인간의 존재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 뿐이다. 내가 만질 수 있고, 이야기하고, 바라 볼 수 있었던 한 인간이 지워져버렸다는 것. 그리고 세상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 내가 이 육체에서 벗어나서 다른 차원을 볼 수 없는 한, 아내의 죽음은 허무한 종말일 뿐이다. 아무도 아내를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의 머리 속에서도 아내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죽은 정승보다 살아있는 개가 낫다는 속담은 비속하지만 죽음과 삶에 대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갖는 느낌을 정확히 표현한다. 천국을 믿는 예수교도들 조차 그렇게 좋은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도  이 세상에는  없다. 한 인간이 남긴 업적, 후손, 기억. 그런 모든 것들도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인간들도 죽고, 잊혀진다. 한 인간의 죽음은 하나의 세상의 종말이다. 인간은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위로하고, 기억하고, 갖가지 정당화를 할 수 있지만,...

Mozart 소나타와 아내

아내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음악을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루라도 모짜르트를 듣지 않는 날이 없는 나와는 달랐다. 노래방에 가도 노래를 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아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것은 한 두번 정도 뿐인 것 같다. 그러나 매일 음악을 - 특히 모짜르트를 - 틀어놓는 나의 습관 때문인지 한번은 신촌의 백화점 지하통로를 같이 걷다가 음반점에서 흘러나오는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더니 "이 음악 좋네"라고 말하는 걸 보고 " 세뇌가 되었군" 하고 속으로 웃었던 일이 기억난다. 애들 저녁을 먹이고 둘이서 가끔 뒷산 공원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이어폰으로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310번을 듣고 있었다. 늦가을 저녁의 한가로움 속에서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소나타의 2악장이 흐르고 있을 때 나는 잔잔한 행복을 느꼈고 나중에 늙어서도 둘이서 이렇게 산책을 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병에 걸린 후 같은 음악을 자주 들었다. 사람도 못알아보고 말도 못하고 음식도 못넘기는 상태가 되어 요양병원에 들어가고 나서는 매일 아내를 보고 올 때도 차안에서 그 음악을 자주 들었다. 하나의 아이러니는 사실 모짜르트는 빠리에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을 때 이 음악을 작곡했다는 점이다. 아내와의 안온한 미래를 꿈꾸는 산책로에서 듣기에는 이 소나타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오히려 불길한 전조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아내가 생각날 때 해블러가 연주한 이 음악을 듣는다. 이제는 음악과 상황이 어울리게 되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음악. 모짜르트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나는 아내를 생각한다.

시간

8년전, 9년전 쯤에 토요일.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 차를 몰고 오면서 길을 잘 못 들어 한 번도 가지 않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고, 차안에는 Ronald Brautigam의 Mozart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 비에 젖은 거리. 상쾌한 기분. 생각난다.

홀아비를 위한 게임

MAY PAYNE 3를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 한다. 마누라하고 딸이 죽은 전직 경찰. 매일 술만 퍼마시고 헛소리만 지껄이는 인간이 주인공이다. 총질을 하다가 힘이 딸리면 술을 마신다. 그러면 파워가 보충된다. 홀아비가 하기에는 동병상련이 느껴지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비참한 캐릭터를 넣은 게임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달라지는 건 없다.

아내가 가고난 후 나는 아내가 있을 때 병을 고치려고 갖가지 supplement와 의학 논문을 검색했던 것과 비슷한 짓을 했다. 이번에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영혼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래 책들이다. destiny of souls journey of souls afterlife experiments talking to heaven frequency quantum reality the light beyond paranormal holographic universe life after life the fabric of the cosmos 이 세계는 홀로그램이라는 것,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이런 양자물리학의 주장. 영혼은 사후에도 존재하고 사랑했던 사람과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사후세계에 대한 여러 책들의 주장. 또는 연구 결과. 그러나 우주의 구조가 어떻든, 영혼이 환생하든, 살아있는 사람과 어떤 방법으로 접촉하든지 간에 따뜻한 살을 가지고 있는 육체로서의 아내는 내 옆에 없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없다. 애초부터 산이 없던 자리에 산의 허상을 만들어 낼 뿐이다. 현실이 유지된다면 믿음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