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생각

죽음 이후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또는 확실성에 대해서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런 책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인생이 백배 천배 행복한 인생이다. 다른 인간들은 그런 책이, 그런 정당화가 필요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 익숙하게 몸을 맡긴 채 사는 것이다. 
희선이 나처럼 인생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이었더라면, 희선이 그렇게 일찍 가버린 것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부당함도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희선은 삶을, 인간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진 상태로 동네 아줌마들에 둘러 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희선의 사진을 우연히 찾았다. 이런 사진을 볼 때 나는 더 슬퍼진다. 
내가 죽고, 희선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인간은 50세도 되기 전에 죽고, 유치원 시절부터 생에 의심을 가졌던 나는 살아남아서,   인생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도 보기전에 죽는 것을, 고통에 시달리다가 작별인사도 못하고 가버리는 것을 봐야 하는 이런 인생은, 이런 세상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담배를 피우면서, 무슨 신호라도 보내서 나를 말려달라고 희선에게 말을 하지만. 물론 희선이 무슨 신호를 보내는, 가로등을 깜박이거나, 꿈에 나타나서 잔소리를 하거나, 하는 그런 일은 나에게 생기지 않는다. 
희선이 누구에게 살해당했다면, 나는 그 살인자를 죽여서 최소한의 만족은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희선을 죽인 건 인간이 아니다. 암세포에게 복수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희선이 병에 걸린 것이 복잡한 운명의 결과라면, 나는 더 더욱 복수의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우주에 대해서, 또 있다면 신에 대해서, 복수를 할 수는 없다. 
복수를 하지 못해서 나의 마음속에 수년 동안 쌓여온 이 분노. 신에게도, 세상에게도 퍼부을 수 없는 분노. 어쩌면 그 분노 때문에 나는 담배를 피우는지도 모른다. 부셔버릴 수 있는, 복수를 위해 죽여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무도 없으니, 나를 파괴시키고,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책임져야 하는 자식들이 있으니, 그런 행동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으니, 소극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나를 죽이는 흡연을 택하는 것이다.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그게 나의 인생이다. 나의 엿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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