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선과 친구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항상 “애들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지난 2년간 엄마로서의 존재가 서서히 지워졌기 때문에 정신적인 타격이 크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희선이 떠난 지 9일이 지났는데 회사를 나가고 살림을 하다보면 어느덧 희선에 대한 생각은 배경으로 밀려가는 것을 느낀다. 희선을 완전히 잊는 일은 없겠지만 벽 구석에 걸린 사진처럼 희미한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다. 친구는 휴대폰에 넣은 희선의 사진을 보고 나에게 왜 자신을 괴롭히냐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희선의 존재를 상기시키지 않으면 결국에는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사진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은 기억보다 강하니까.
같은 날에 친구 넷이 놀러가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들 속에 희선은 얼굴에 애띠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몇살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얼마안된 후라면 열아홉? 스물? 나이들어 찍은 사진에서 보이는 미소가 없는 걸 보면 커다란 세상에 발을 디딘지 얼마 안된 사회초년생의 불안감이 보이는 표정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활짝 웃고 있는 사람이 없다. 소녀에서 처녀가 되기 전의 불안한 모습들인가.
희선이 입고 있는 옷과 구두는 산지 얼마 안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장만한 몇 안되는 의상 중 하나일 것이다. 청바지와 운동화가 아직은 더 어울리는데 정장을 입어야할 시기가 너무 빨리 온 것인가? 이 사진은 희선이 나를 만나기전까지 8년 정도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일 것 같다.
이 글을 다 쓰고나서 희선이 사진 뒤에 적어놓은 날짜를 발견했다. “1988.10.9 창경궁”. 스물세살 적의 사진이었다. 나의 어줍잖은 추측과 달리 회사생활을 한지 적어도 3년은 되었을 때의 사진이라는 얘기다. 나의 추측은 다 틀렸지만 여전히 이 사진속의 희선은 처녀보다는 소녀처럼 보인다. 같은 시기의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골방속에서 일기만 적고 있는 소년과 다름 없었다.
좋은 가을 날 공휴일에 친구들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미래에 대한 이야기. 어떤 남자를 만날까에 대한 수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24년전으로 가서 희선을 보고 싶다. 먼발치에서 바라볼 것이다. 그때의 희선에게는 나는 그저 낯선 아저씨에 불과할테니까.
Comments
Post a Comment